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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피해자 유희남 할머님 타계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16-07-11

나눔의 집 / 일본군'위안부'역사관 / 국제평화인권센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번지 / 전화 031-768-0064 (대표 송월주 / 원장 원행)

 

 

시행일자 : 2016. 7. 10일(일)

수     신 : 각 후원자 및 언론사

발     신 : 나눔의 집 / 일본군‘위안부’역사관 / 국제평화인권센터 

 

제목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유희남 할머님 타계

 

1. 일본군'성노예'피해자 유희남(1928년 11월 4일-호적상 1929년 2월 23일) 2016년 7월 10일 오전8시24분 타계

 

2. 1928년 충남 아산군 선장에서 태어났다. 15살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 60리가 넘는 곳으로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1943년에 시모노세키에서 1년동안 일본군‘성노예’피해를 당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싱가폴로 이동중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돌아오다가 오사카 주민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도착 후 계속 도망을 다니다 절에 들어가 생활을 했다. 해방 후 생계를 위해 보따리 장사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2012년 6월에 나눔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슬하에 1남 3녀의 자식이 있다. 나눔의 집 입소 후에는 많은 활동과 증언을 통해,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28일 한일 정부간 합의안에 대해, 피해자들의 의사나 동의가 없어 인정 할 수 없다고 강하게 한일 정부를 질타 하였습니다. 또한 유희남 할머님은 폐암으로 투병중인데도 특히, 반인권적이고 반역사적인 책을 써서 할머님들 명예를 실추시킨 박유하 재판에 열정을 가지고 싸웠다. 그러나 폐암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또한 2015년 7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연방법원에 인도에 반한죄와 명예훼손으로 일왕, 아베총리, 산케이신문, 미쓰비시기업에 소송을 제기 했다.

 

평소 말씀은 다시는 이러한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 하시면서, 그래서 피해 역사를 유네스코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소녀상은 평화를 상징하며, 자신의 분신이라고 진술했고, 당시 위안소 생활은 끔찍했고, 지금은 불면증과 소화불량과 가슴이 뛰는 심장병이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후원자들의 도움에 보이지 않는 고마움과 사회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자식들에게는 부족한 엄마로 마음속에 늘 그늘이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1) 타계 일시: 2016년 7월 10일 오전 8시23분 국립중앙의료원 2) 장례식장 : 국립의료원 장례식장3) 발인식: 2016년 7월 12일 오전 8시4) 장지 : 나눔의 집 추모공원

5) 연락처 : 031-768-0064(나눔의 집 사무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010-2028-1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