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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2025년 2월 16일 별세하신 길원옥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25-02-18
첨부파일

2025216, 길원옥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걸어오신 길을 기억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만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 헤이룽장성의 위안소로 끌려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 공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따라나선 길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몸과 마음은 깊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다시 일을 나섰고, 또다시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 도키와위안소로 연행당했습니다.

그곳에서 요시모토 하나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참혹한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한테 당한 생각만 끔찍스럽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반항을 하다 이렇게 [되었]을까……시방까지도 이렇게 흉터가 크니, 옷이 피에 젖어서 뱃겨 내지를 못하고 찢어냈다니까. 그걸 상상을 해봐요.”

 

해방 후 어렵게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3.8선에 가로막혀 고향인 평양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안가가지고 [삼팔서니] 딱 이렇게 닫혀버렸으니... 다시는 뭐 그랴말로 가고 오고 [못 하고] 맥혀 버렸지.”

 

홀로 남겨진 삶 속에서도 할머니는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업둥이로 얻은 아들을 키우며 다시 삶의 의미를 찾으셨고, 아들의 성장 속에서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좋은지. 나 혼자 그냥 아무도 없이 방에서 뱅뱅뱅 [돌면서]. ‘하느님 아버지, 감사해요. 나 같은 이런 무식쟁이한테서 아들을 주고, 그 아들로 인해서 이렇게 학교를 그래두 대학교 보낸다는 게 이게, 이게 웬 복입니까?’”

 

긴 침묵 끝에 1998,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일본과 유엔에서 증언하며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전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이라도 한이 풀어졌으면, 한 마디라도 [일본의] 진실한 사과의 말을, 진실한 사과의 말을 저기 하는(들어보는) 게 소원이죠.”

 

그러나 할머니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평양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도,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는 희망도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제는 아픔도, 두려움도 없는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길원옥 할머니의 용기와 투쟁은 남은 우리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

 

 

 

 

※ 할머니 생애는 여성가족부 “2016년 일본군위안부피해 관련 사료 조사 및 D/B화 사업보고서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구술자료 재정리 자료집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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