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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니 또 별세...이제 34명 생존
작성자
나눔의 집
작성일
2017-11-01

이기정(1924년생, 쥐띠)할머님, 2017년 11월 11일 오전 8시 35분경 타계

일본군'위안부'피해자로 고통을 겪으신 당진의 이기정 할머니가 노환으로 영면하셨다.이기정 할머니는 2017년 11월 11일 오전 8시 35경, 당진 탑동에 위치한 우리병원에서 입원(2014년 낙상 사고) 중 타계하셨습니다. 유족들은 고인을 당진장례식장으로 모셨으며, 홍성 추모공원에서 화장후, 장지는 천안 망향의 동산입니다.

장례식장 : 당진 장례식장 2호실(041-354-4444)

간호사 시킨다고 해서 갔는데

이기정(94) 할머니는 열다섯살에 싱가폴 위안소로 끌려갔다. 간호사가 되는 줄 알고 갔는데 도착해보니 위안소였다. 할머니는 최근 몇년 새 부쩍 거동이 불편해졌다. 낙상사고로 관절을 크게 다쳐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다. “안 아플 적에는 저놈(보행보조기) 끌고 많이 댕겼는데 인자는 그것도 힘들어.” 바깥 출입이 힘든 할머니는 누구든 찾아오면 “늙은이 좋다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손을 꼭 붙들곤 한다.

증언-할머니는 열다섯에 싱가포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고향인 당진을 떠났는데 위안부가 됐다. “열다섯에 (위안소에) 갔는데…간호사 시킨다고 해서 돈 벌려고 갔어. 근데 이상한 데로 끌고 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위안소 운영자는 끌려온 이들에게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하루 40~50명의 군인을 받게 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싫다고 하면 때리고 도망가면 죽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파도 참아야지. 원망하고 울고 죽겠다고 생각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와 어쩌겠어.” 할머니는 "말하면 속만 시끄럽다”고 했다.

위안소에 있으면서 딱 한 번 희망을 가진 적은 있다. 군 부대가 싱가포르에서 철수하고 대만으로 이동한다고 할 때다. "군인들 따라 싱가포르에서 대만으로 갈 때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설렜는데…아니었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군인들은 전보다 더 난폭해졌다. 할머니는 "내가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5년간 고초를 겪고 해방이 됐지만 할머니는 가족에게 가지 못했다.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다. "그거를 아버지한테 말을 할 수가 없으니…그거를 어찌 말하나. 내가 죄인이지.” 대신 자기보다 스무 살 많은 남자를 만나 같이 살기 시작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부부는 아들을 입양해 귀하게 키웠다. 지금은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아들 내외도 없다. 손녀가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다.

할머니는 사람에게 속아 모질게 당했지만 또한 사람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왜 나는 위안부로 끌려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하다가도 정부가 도와주는 거 생각하면 감사하고, 혼자 있어 외롭고 심심하다가도 또 이렇게 찾아와 주는 양반들이 있어 감사하고. 할배는 떠났어도 늙은이 찾아와 주고 손톱 깎아 주는 손녀가 있어 감사하고.”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자 일행의 손을 꼭 잡았다. "더운데 멀리까지 찾아와 줘 고맙소. 내가 정신은 말짱하니 더 살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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